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6장에서는 브링리가 근무를 시작한 후 경험한 첫 블록버스터 전시 이야기로 시작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피카소› 특별전에 배치를 요청했고, 그는 4개월 남짓한 기간에 200시간은 거뜬히 피카소의 드넓은 머릿속을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얼마나 황홀한 시간들이었을까.
어느 날 근무 구역 배정을 기다리며 ‹뉴욕타임즈› 신문을 펼친 브링리는 파리에서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레제, 모딜리아니 작품 도난 사건 기사를 접한다. 이후 그리스•로마관으로 배치되어 고참에게 도둑의 신 ‘헤르메스의 대리석 두상’ 절도 사건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도난 당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동진 작가 서평에서 언급했던 미술관 관람 유형 세 가지인 관광객, 공룡 사냥꾼, 사랑에 빠진 사람도 6장에서 나온다.
뉴욕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 중 하나라니. 읽으면 읽을 수록 격하게 가 보고 싶구만.
메트는 매년 거의 7백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이건 양키스, 메츠, 자이언츠, 제츠, 닉스 그리고 네츠의 관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방문객보다도 많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중국 국립 박물관보다는 덜하지만 박물관 중에서는 3위다. 방문객의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오고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내국인 방문객 중 다시 절반은 뉴욕시 밖에서 온다. 메트는 원하는 만큼 내리를 입장료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돈 걱정할 필요 없이 공원에 소풍을 온 기분으로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낸다 (슬프게도, 2018년 이후 이 방침은 뉴욕주 거주자에게만 해당한다.) 전반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이름에 걸맞은 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채로운 이유로 이 위대한 도시를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이 뉴욕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로 모여들고 있으니 말이다.
138~139.p
6장 –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1. 배우
어느 일요일, 나는 1.8미터 높이의 장미 시대 그림 ⟨배우⟩ 앞에 배치되었다. 몇 달 전 한 운 없는 관람객이 비틀거리다가 이 그림과 충동하는 일이 있었다.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캔버스 오른쪽 하단에 15센티미터 정도의 긴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그림은 지금 보수되어 보호용 유리 뒤에 있지만 사람들이 희미한 흉터를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일 때마다 나는 움찔하고 놀라게 된다. (130.p)
The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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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얀 옷을 입은 여인
피카소의 그림을 보기 위해 자리를 다투는 사람들로 가득 찬 전시실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그러면 동시에 관람객들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좁은 해자 같은 통로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시실 저편의 한 신사가 태연자약하게 그 통로로 잠입하려는 모습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그의 주의를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라는 나의 팬터마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그래서 내쪽으로 와서 직접 이야기를 듣기로 결정한 듯하다. 좋은 생각이다. 지금 내가 그의 출입을 저지하려고 하는 바로 그 통로를 이용하는 것이 이쪽으로 오는 가장 짧은 동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더니 곧 바로 피카소의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을 표구한 액자에 전속력으로 어깨를 부딪힌다. (130~131.p)
Woman in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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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헤르메스의 대리석 두상
그리스•로마관으로 배치된 어느 오후, 고참인 화이트홀 씨가 평범한 그리스 대리석 두상을 가리킨다. “이게 누군지 알아?”
모른다
“헤르메스.” 그가 말한다. “그가 어떻게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라커에 들어가게 됐는지 알아?”
그것 역시 모른다.
“그럼 내가 알려주지. 1979년쯤이었다. 내가 여기서 일하기 얼마 전의 일이야. 평소와 다를 것 없던 날이었다더군. 투탕카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는 걸 빼고는. 여태까지 메트가 열었던 전시 중에 제일 큰 규모였어. 검색해봐도 좋아. 그게 원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불쌍한 경비원 하나가 그리스 전시관을 순찰하다가 뒤로 돌았는데 전에는 비어 있지 않았던 게 확실한 전시대 하나가 비어 있었다는 거야. 며칠이 지나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됐어. 경찰들한테 헤르메스를 찾고 있다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몇 번 라커를 들여다보는 게 좋을 거라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거야. 헤르메스는 도둑의 신이지, 우연찮게도. 경찰이 쇠지렛대로 무장한 채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해서 라커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이 빈 눈구멍들이 그들을 마주 보고 있었대.”
Marble head from a herm
목 뒤쪽의 평평한 부분과 거칠고 홈이 파인 머리카락 처리를 통해 이것이 직사각형 기둥의 끝 부분인 Herm Head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헤르메스와 마찬가지로 도로와 출입구의 수호자인 헤르메스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4. 도난당한 키프로스 팔찌의 전기주물 복제본
내가 찾은 첫 번째 절도 사건은 1887년, 한 경비원이 전시 케이스가 지렛대로 열어젖혀져 있고 고대 키프로스의 금팔찌가 도난당한 것을 알아차리는 ‘충격적인 발견’을 한 사건이다. 당시 신생 미술관이었던 메트로서는 키프로스 컬렉션이 유일하게 큰 가치가 있는 소장품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Electrotype copy of a gold bracelet
1887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원래 팔찌에는 파포스의 왕인 에테안데르(Eteander)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정확한 사본은 도난 이전에 박물관이 작성한 기록을 바탕으로 Tiffany & Co.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5. 여신 네이트 소형 조각상
다음으로 찾은 기사는 1910년에 발행된 것이다. 그래 한 남자가 이집트 조각상을 가지고 바우어리 지역 전당포로 들어섰다. 다음은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그 남자의 말이다. “여기 놋쇠 덩어리로 돈을 좀 벌고 싶은데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네, 우리 고모가 갖고 있던 거라. 하지만 고모는 이런 걸보는 안목은 있어서 산 것들은 항상 진품이었어.” 전당포 주인은 2500년 된 유물을 훑어보며 이렇게 투덜거렸다. “당신이 지금 세공이라고 말하는 게 놋쇠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어.” 그는 남자에게 50센트를 주었고 도둑은 전당표까지 팔아 10센트를 추가로 챙겼다. 이미 도독맞은 유물을 찾고 있던 경찰은 평소처럼 전당포들을 순찰한다가 그 조각상을 발견했다. ‘두려운 존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여신 네이트는 이제 메트로폴리탄 이집트 전시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135~136.p)
Statuette, Neith
26왕조부터 사이스는 왕들의 거주지로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사이스의 주요 여신은 네이트였으며 26왕조 동안 사이스를 위해 여신의 많은 동상이 만들어졌지만 수도 메멘피스나 사이스 하류에 있는 도시 나우크라티스와 같이 그녀를 숭배하는 도시에서도 만들어졌습니다. 제26왕조 이후에는 도시가 더 이상 왕조의 중심지가 아니었지만 여신과 도시는 둘 다 어느 정도 명성을 유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