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6장 작품 ②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펼치기 시작한지 3주가 되어간다. 9장 중간에서 읽기를 멈추고 6장 작품을 이어서 정리한다. 본의 아니게 책을 두 번 읽고 있다. 작품 사진을 직접 찾아 정리하니 속도는 더디지만, 작품 사진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간접 투어를 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책 제목을 검색해 봤는데, 브링리가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가이드 투어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브링리에게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니. 눈에 띄는 것은 “한국에서 제 책이 인기가 있다는데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 라고 브링리가 기자에게 묻는다. 기자는 “아마도 한국인들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에다 책을 통해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본인 생각에는 본인처럼 이동진 평론가 추천으로 읽기 시작한 케이스가 많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실제 작년 연말에 책 소개 영상이 업로드 된 후 교보문고에서 책이 빠르게 품절되었고, 1월초가 되어서야 수령했다.

이전 글에 이어서 도난당한 작품 소개를 이어나간다.

사진에서 눈을 돌려 전시실을 둘러보니 문득 웃음이 터질 것 같다. 전세계에서 모인 수십 명의 살아 숨 쉬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데 하나같이 벽에 걸린 무색의 움직임 없는 인물 사진들을 보느라 옆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현실의 사람들은 흔해 빠진 대상들로 간주되는 듯하다. 정말이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대상 아닌가. 우리의 삶을 순식간에 지나쳐 영원히 사라져버릴 낯선 이들에게 왜 구태여 관심을 쏟겠는가.

151.p

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①

6장 –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6. 베퇴유의 풍경

1966년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우비를 입은 한 남자가 게인즈버러의 그림을 슬쩍 들고 나가다가 경비원들이 쫓아오자 그것을 떨어뜨리는 일이 있었고, 브롱크스 출신의 채소 행상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네의 ⟨베퇴유 풍경⟩에 구멍을 냈다. (137.p)

View of Vétheuil
오른쪽 하단의 양귀비 밭을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산책로는 모네가 1878년에 집을 지었던 파리 북서쪽 마을인 베퇴이유에 있는 교회 탑을 향하는 길을 가리킵니다. 풍경이 연속적으로 보이지만 작가는 이 풍경을 세느강의 한 섬에서 그렸습니다. 강; 물은 포플러 나무에 의해 가려져 있습니다. 모네는 1880년 여름 동안 베퇴이유 주변 지역을 광범위하게 묘사하여 매우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컬렉션에서 세 가지 다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7. 유프로니오스 화병 (사르페돈 크라테르)

1973년, 미술관은 도난의 수혜자였다. 당시 메트의 관장은 여러 국경을 넘어 조각조각 밀수된, 화공 유프로니오스가 제작한 아름다운 그리스 화병의 구매를 주도했다. ‘뜨거운 냄비’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이 화병은 ⟪뉴욕타임스⟫ 마피아 전문 기자에 의해 여러 번 폭로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2006년, 이탈리아 정부에 반환되었다. (137.p)

Euphronios krater or Sarpedon krater
고대 그리스의 테라코타 크라테르로서, 물과 포도주를 섞는데 사용되었다. 기원전 515년경에 만들어졌으며, 고대 그리스의 도기 화가이자 도공으로 유명했던 유프로니오스가 만든 도기 중 현존하는 27개 중에서 가장 온전하며,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의 도기 중에서도 가장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고 일컬어진다. 1972년부터 2008년까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가, 2006년 2월에 이루어진 합의 협상으로 이탈리아에 반환되었다. 현재는 이탈리아 로마의 빌라 줄리아(Villa Giulia)에 있는 내셔널 에트루스칸 박물관(National Etruscan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8. 람세스 6세의 인장 반지

9. 드가의 청동 조각상 두 점 (아라베스크식 드방, 할리퀸 역할의 무용수)

10. 켈트족 동전 한 쌍 (베네티족 또는 남네티족의 금화, 파리시족의 금화)

11. 고대의 드레스 고정 장치 (장신구, 드레스 혹은 소매 고정장치)

1979년에서 1981년까지는 아주 다사다난한 기간이었다. 가장 먼저 그 헤르메스 두상에 칼자국이 났다. 1년 후에는 10대 청소년 몇 명이 옷걸이를 이용해 허술하게 만들어진 전시 케이스 너머 람세스 6세의 반지를 낚아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한 보물상이 반지의 반환을 걸고 미술관에서 돈을 갈취하려는 바람에 붙잡혔다. 이 사건의 범인들이 체포된 건 미술관이 에드가 드가의 청동 조각상 두 점을 도난당했다고 실수로 발표한지 불과 며칠 만의 일이었고 그 후 이 박표는 재빨리 철회됐다. “살짝 바보 같은 짓”이었다고 말하면서 메트 관계자들은 드가의 조각상들이 계속 수장고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한 청소부가 켈트족 동전 한 쌍과 금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드레스 고정 장치를 포함한 몇 가지 작은 물거들이 전시 케이스에서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결국 날카로운 눈을 가진 줄 알았던 그 청소부가 범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37~138.p)

Signet ring of Ramesses VI

Arabesque Devant
드가는 일생 동안 왁스, 점토, 철사와 같은 비정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무용수들의 조각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상속인들은 이 연구를 청동으로 주조했습니다. 드가의 춤 조각품 대부분이 한 자세에서 다른 자세로 어색하게 전환하는 인물을 표현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무용수의 안정적인 자세로 유명합니다.

Dancer in the Role of Harlequin
1917년 드가가 사망하자 그의 작업실에서는 150개 이상의 비유적 조각품이 발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은 깨지기 쉬운 왁스, 점토, 플라스티린(왁스와 오일 기반의 모델링 재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Gold Coin of the Veneti or Namneti
켈트족은 아마도 기원전 200년대에 켈트 전사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헬레니즘 왕들로부터 금화와 은화를 받은 후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이는 동전은 헬레니즘 동전에서 파생된 모티프(한쪽은 머리, 반대쪽은 마차와 말)를 표시하지만 애니메이션 디자인은 켈트족의 미학을 전달합니다.

Gold Coin of the Parisii
켈트족은 아마도 기원전 200년대에 켈트 전사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헬레니즘 왕들로부터 금화와 은화를 받은 후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이는 동전은 헬레니즘 동전에서 파생된 모티프(한쪽은 머리, 반대쪽은 마차와 말)를 표시하지만 애니메이션 디자인은 켈트족의 미학을 전달합니다.

Ornament
이와 같은 물체는 일반적으로 “드레스 고정 장치” 및 “소매 고정 장치”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더 작은 “소매 고정 장치”는 현대의 커프스 단추와 매우 유사하게 작동한다고 제안되었습니다. 디스크는 의복의 틈새를 통해 당겨졌을 것입니다. “드레스 잠금 장치”는 의복에 꿰매어진 고리로 고정되었을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