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7장 작품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7장은 묵직하게 시작한다. 브링리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기분이 어땠을까. 가늠할 수가 없다.

7장에서는 연애 초장기였던 어느 날 방문한 맨해튼 가장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분관 클로이스터스 작품 네 가지가 소개된다.

그리고 이동진 평론가가 가장 인상적으로 묘사되는 미술품으로 언급했던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이 등장한다.

그런 밤 중 하나였다. 늦은 밤, 크리스타 형수와 미아, 타라 그리고 내가 형을 돌보고 있었다. 형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짓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164.p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6장 작품 ③

7장 –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1. 랑곤의 노트르담 뒤 부르 성당

건물은 육중한 석조 블럭으로 지어진 12세기 프랑스풍 부속 예배실이었다. 규모가 작고 장식이 거의 없어서 엄숙한 우아함이 흘렀다.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가톨릭 학교를 다닌 타라가 82번가에 있는 성 안셀렘 교회보다 이 건물이 낫다고 하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타라는 내 손을 잡고 성단으로 가서 성체 감실이 있었을 자리를 알려주고, 추억에 잠겨 눈을 가끔 굴리며 신을 두려워하던 시절을 가벼운 어투로 회상했다. (159.p)

Chapel from Notre-Dame-du-Bourg at Langon
랑곤 성당의 오른쪽 벽은 원래 노트르담 라 그랑드 소브에 종속물로 설립된 노트르담 뒤 부르 성당 교회 성가대 남쪽 벽의 요소로 구성되었다.

2. 쿠사 수도원

우리가 처음 방문한 클로이스터는 12세기 카탈루냐에서 지어진 쿠사 수도원으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과실수에 노래하는 새가 빼곡하게 앉아 있고, 오솔길들이 사방에서 뻗어 가운데 분수대에서 만나는 정원이 있으며, 그 가장자리로 분홍색 대리석 기둥들이 늘어선 복도가 둘러져 있었다. 수도승들은 식당이나 기숙사로 가는 길에 그곳을 지나쳤으리라. 어떨 때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삽을 들고 나와 이 외딴 정원을 보살펴 그들만의 창조물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160.p)

Cuxa Cloister
피레네 삭맥 북동쪽 카니구 산 기슭에 위치한 생 미셸 드 쿠사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878년에 설립되었다. 1791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쿡사의 수도사들이 떠났고, 이후 수도원의 석조물 대부분은 흩어졌다. 12세기에 건축된 수도원 회랑은 현재 크기의 약 두 배였으며, 대부분의 건축물은 현대적이다.

3. 메드로 제단화 (수태고지 세폭 제단화)

4. 베리 세인트 애드먼즈 십자가 (클로이스터스 십자가)

5. 클로이스터 (본퐁 회랑)

우리는 다음 몇 개의 전시실을 멈추지 않고 쭉 지나갔다. 혼자 갔었다면 걸음을 멈추고 ⟨메드로 제단화⟩를 자세히 살펴보고 베리 세인트 애드먼즈 십자가를 연구하듯 뜯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타라는 ‘예술 취향’이 아니었고 예술품 말고도 더 시급하게 음미해야 할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말도 안 되게 멋진 전말을 품은 두 번째 클로이스터에서 멈춰 섰다. 그곳은 미술관과 수도원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대신 건물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팰리세이즈 파크의 절벽 아래로 흐르는 허드슨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62.p)

Annunciation Triptych (Merode Altarpiece)
방에 막 들어간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 마리아에게 그녀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왼쪽 안구를 통해 쏟아지는 황금빛 광선은 십자가가 달린 소형 형상을 담고 있습니다. 오른쪽 날개에는 동정녀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목수 작업장에서 판자에 구멍을 뚫고 일하고 있습니다. 벤치 위의 쥐덫과 거리로 통하는 상점 창문에 있는 쥐덫은 십자가를 악마의 쥐덫으로 식별한 성 어거스틴의 글에 언급된 내용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왼쪽 날개에는 무릎을 꿇은 기증자가 열린 문을 통해 중앙 장면을 목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뒤에 무릎을 꿇고 있고, 마을 사자는 정원 문에 서 있습니다. 소유자는 개인 기도에 사용하기 위해 삼부작을 구입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살았던 곳과 다르지 않은 실내에서 그리스도가 잉태되었다는 이미지는 그들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희망을 강화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The Cloisters Cross
로마네스크 예술의 걸작 중 하나인 이 제단 십자가에는 약 92개의 인물과 98개의 비문이 새겨져 있으며 기독교 예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복잡한 도상학 프로그램의 수단입니다. 한쪽에는 양식화된 나무 줄기가 십자가 위에 겹쳐져 있고, 끝 부분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의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히브리 선지자들이 각자 자신의 말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중앙에 우화적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어린 양의 메달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회당의 의인화로 꿰뚫린 것 같습니다. 복음서의 저자인 전도자들의 상징이 끝부분에 나타납니다. 왼쪽에는 마가의 사자, 오른쪽에는 누가의 소, 위쪽에는 요한의 독수리가 있습니다. 바닥에 있던 마태복음의 천사는 사라졌습니다.

Cloister
가느다란 기둥 위에 21개의 이중 주두로 재건축된 이 회랑의 L자형 아케이드는 박물관의 아름다운 허브 정원을 가리고 있습니다. 머리 장식은 느슨하게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구근 잎이 모서리에 눈에 띄는 소용돌이 모양을 형성하는 것과 머리의 몸체를 껴안고 있는 크고 평평한 잎이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툴루즈 근처 Bonnefont-en-Comminges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이중 수도 중 최소 9개(6개는 여기에 설치, 1개는 Trie Cloister에, 2개는 창고에 있음)는 후기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르베스에 있는 13세기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은 1907~8년에 철거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조각품에 대한 스타일적 분석은 이 조각품이 이 지역의 다른 기념물에서 유래했다는 오랜 믿음을 뒷받침합니다.

6. 곡물 수확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은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말이다. 배경 중간쯤 교회가 있고 그 뒤로 항구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아스라한 지평선까지 굽이쳐 펼쳐진다. 화면 앞쪽에는 큰 낫으로 곡물을 거두는 남자들과 그것을 한데 묶느라 허리를 굽힌 여자가 보인다. 맨 앞쪽 구석에는 일을 하다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 명의 농부들이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애정을 담아 묘사되어 있다. (164.p)

The Harvesters
이 그림은 원래 앤트워프 상인이 자신의 시골집을 위해 의뢰한 다양한 시기를 묘사한 6부작 시리즈에 속했습니다. 보통 7월과 8월을 대표한다고 알려진 이 특별한 장면은 수확기의 나른한 더위를 한껏 드러냅니다. 일부 인물은 들판에서 일하지만 다른 인물은 졸거나 먹거나 심지어 물에 잠기기도 합니다(먼 배경). 시골 생활의 순환에 대한 브뤼겔의 직접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한 이 그림은 불가능한 풍경에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그려넣었습니다. 이 그림은 브뤼겔의 고향인 플랑드르 저지대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곶의 광활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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