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훌쩍지났지만 ⟨EBS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 시리즈 5부작⟩을 시청한 후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한 그 기분이.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다시 시청하며 정리해 본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자본론은 칼 마르크스가 집필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편집한 책이다. 제1권은 1867년에 마르크스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에 엥겔스에 의해서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 칼 마르크스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 2008년 영국 BBC 설문 조사 결과,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철학자에 ‘칼 마르크스’가 선정되었다. 물론 어떤 분은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다. 보통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면 그의 혁명적인 투쟁이나 공산주의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최초로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일까? 의문을 던진 철학자였다.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 부품처럼 되어버린 노동자의 삶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고 싶어했다. 청년 시절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 푹 빠져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 인간도 자연도 사회도 그 어떤 것도 고정 불변이 아니라 정반합으로 변화한다는 철학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변화 발전 시키는 주체가 세계 밖에 존재하는 ‘절대 정신’이라는 헤겔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이에르바하가 주장한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고 지배하며 이끌어가는 ‘유물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헤겔의 ‘변증법’에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더해서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갖게 되었다. 칼 마르크스는 자신이 던진 의문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만남
1843년 칼 마르크스는 급진적 반정부 라인 신문의 편집장이었다. 그러나 언론 탄압으로 자유를 찾아서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된다. 여기서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만나게 된다. 하나는 공산주의, 다른 하나는 엥겔스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정말 훌륭한 사상가라고 생각했다. 엥겔스는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후원자, 공산주의의 후원자였다. 그는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 원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돈을 보냈다.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다. 둘은 평생의 동지가 되었다.
엥겔스보다 마르크스는 최고의 사상가이다. 하지만 둘 중 한 명과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면 마르크스보다는 엥겔스가 더 좋을 것 같다. 마르크스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생각에 갇혀 비판하는 것 외에는 사람의 얘기에 흥미를 두지 않았다. 반면 엥겔스는 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즐거운 사람이었다.
또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보았다. 그리고 공산주의 조직과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념으로 혁명을 준비한다.
공산당 선언 발표
결국 마르크스는 1845년 브뤼셀로 가서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했다. 브뤼셀의 비밀 동맹과 접촉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들은 그곳에서도 혁명을 원했다.
1848년 드디어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에 강령을 밝히는 선언문을 쓰게 된다.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그 개선방향을 찾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변화 가능한 것들을 연구했다. 위기도 있었고 탄압을 겪기도 했다.
그들의 선언이 출판된 1848년, 유럽은 혁명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였다. 마르크스는 브뤼셀, 파리, 쾰른 등에 가서 혁명에 참가했다.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는 붉은 박사라는 악명과 인류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는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된다. 하지만 잇따라 추방형이 내려졌다. 결국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자본론 집필 시작
1949년 마르크스는 영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와이프 제니는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난했다. 1855년 4월 아들 에드가가 폐렴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궁핍한 생활을 이후 5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마르크스는 여섯아이 중에 세아이를 잃게 된다.
마르크스의 문제 중 한 가지는 돈이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다. 얼마간의 원고료를 받기도 했지만 항상 돈 문제에 시달렸다. 이후 마르크스 가족은 유산과 엥겔스의 기부금 덕분에 작은 연립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생활이 안정되자 드디어 자본론의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낮엔 대영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주말엔 소풍을 가거나 다른 독인 이민자들과 교류했다. 그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 모순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수백번 읽었다. 그리고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국부론이었다.
드디어 1867년 그가 15년 이상을 바친 필생의 역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자본론 제 1권 ‘자본의 생산과정’이다.
다음 글 : 칼 마르크스 자본론 이해하기 ②
※ 출저 :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 수는 없을까? |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 칼 마르크스 ‘자본론’ 이해하기 |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