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9장 작품 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9장에서는 그리스・로마관과 이슬람 전시관으로 향한다.

브링리는 나체의 그리스인 조각상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가 하면, 같은 작품 앞에서 10대 청소년들이 과제 토론을 하는 것을 엿듣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는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말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206.p

이슬람 전시관은 8년간 철저한 보수 끝에 다시 오픈 준비 중이다. 브링리는 개관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점심시간 43분을 이용해 전시관을 둘러본다. 담당 경비원이 출입 허가를 해 준 것이다.

몇 주 후 이슬람 전시관이 개관한다. 공식 명칭은 «아랍, 튀르키예, 이란 중앙아시아 및 후대 남아시아 미술» 부서이다. 브링리는 이곳에서 장장 3개월간 휴일 없는 근무를 시작하며, 완전한 몰입감을 느낀다.

자, 이제 브링리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만나러 가 보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8장 작품

9장 –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1.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

이 전시실의 유명 인사가 ‘뉴욕’ 쿠로스라고 불리는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이라는 사실이 이 모든 배경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유명한 쿠로스들과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의례적인 이름일 뿐이지만 나는 내 나름의 이유로 뉴욕 쿠로스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그 이름은 마치 이 호리호리한 아테네 청년이 고국을 떠나 아스토리아의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며 우리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메트로 출근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나는 같은 이주자로서, 또 미술관에 매일매일 서 있는 사람으로서 이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과 동질감을 느낀다.

경비원 자국을 밀어내며 똑바로 선 이 나체의 그리스인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포즈처럼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서 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파라오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그 이전의 많은 예술품이 그랬듯이 주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 코우로스는 일종의 비석으로 세상을 떠난 남자의 유해 위에 놓여 그저 ‘이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고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98~200.p)

Marble statue of a kouros (youth)
이것은 아티카에서 조각된 인간 형상의 초기 대리석 조각상 중 하나입니다. 왼쪽 다리는 앞으로, 팔은 옆에 두고 있는 경직된 자세는 이집트 예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자세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조각가들이 사용했던 명확하고 단순한 공식을 제공했습니다. 이 초기 그림에서는 거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가 지배적입니다. 해부학적 세부 사항은 아름답고 유사한 패턴으로 렌더링됩니다. 이 조각상은 젊은 아테네 귀족의 무덤을 표시했습니다.

2. 암포라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옮기는 아이아스가 그려진 목이 긴 테라코타 암포라)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의 오른쪽으로 목이 긴 암포라의 감탄스러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암포라는 기원잔 6세기에 물레 위에서 만들어 채색한 후 가마에서 구운 저장용 항아리다. 항아리의 표면에는 방금 전사한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그의 전우가 전장에서 들어 옮기는 장면이 특별히 공들여 묘사되어 있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는 생명과 활력 그 자체인 인물이다. 그는 화염처럼 발고 커다란 눈을 가진 견실한 몸의 뛰어난 주자로 격렬한 기쁨과 사나운 분노의 포효는 공기를 찢듯이 가른다. 그러나 이 암포라의 그림에 담긴 그의 몸은 애처롭게 축 늘어어져 있고, 그의 정신 혹은 영혼도 마지막 숨과 함께 그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201.p)

이미지가 없어서, 같은 전시관 (갤러리 154)에 전시되어 있는 목이 긴 테라코타 암포라 이미지를 첨부한다. 이 항아리 앞면에는 트로이가 함락되는 동안 아버지 안키세스를 구출하는 아이네아스를 묘사하고 있다.

Terracotta neck-amphora (jar) – No image available
앞면, 아킬레스의 시체를 들고 있는 아이아스
뒷면, 이타카에서 오디세우스로 출발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살아 있을 때 끝나지만, 다른 서사시는 트로이 성문에서의 그의 죽음과 이어지는 전투를 묘사합니다. 아이아스(Ajax)는 아킬레스의 저절한 매장을 위해 시신을 구출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운반하는 아이아스(Ajax)라는 주제는 기원전 6세기에 인기가 있었습니다.

3. 메디치 아테나 (아테나 대리석 두상)

그러고는 지금은 유실된 고전기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품을 모사한 ⟨메디치 아테나⟩라고 불리는 로마 시대의 두상 쪽으로 학생들을 데려간다. 우리는 함께 평온하고 무표정하지만 굳거나 얼어붙지는 않은 여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혈색이 돌고 유연한 지혜의 여신은 바로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강인하고 힘이 넘치는 아름다움이다.

“아테나는 특별한 유형의 지혜를 관장하는 여신이었어.” 학생들에게 말한다. 『오디세이』 읽어봤니? 읽어봤다고? 좋아. 『오디세이』에서 아테나는 오디세우스가 자신감과 영감을 회복해야 할 때마다 나타나. 그런 느낌 있잖아・・・ 상태가 별로인 채로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 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용기가 생기면서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 오늘날 우리는 그 변화가 인간의 내부에서 생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어. 그들에게 힘이란 모두 외부로부터 비롯한 것이었고, 그 힘은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운명을 좌지우지하듯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힘이었어. 아테나는 마음을 꿰뚫고 변화시키는 방식 때문에 ‘가까움의 여신’이라고도 불렸어.” (204~205.p)

Marble head of Athena: The so-called Athena Medici
기원전 430년 페이디아스의 그리스 조각상 사본

이 머리는 오랫동안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인 페이디아스(Pheidias)의 작품으로 여겨져 온 실물 크기보다 큰 아테나 여신상의 훌륭한 로마 복제품에서 나온 것입니다. 눈에는 한때 색깔 있는 돌이 박혀 있었습니다. 머리는 원래 나무로 완성되었고 금박을 입혔던 다락방 헬멧의 앞부분과 목 보호대의 일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리석과 목재를 결합하여 휘장과 투구 등의 속성은 목재로 가공하고 금도금하고 살 부분은 대리석으로 조각하는 방식을 아크로리틱 기법이라고 합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 서 있던 위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 올림피아의 거대한 제우스 좌상 등 매우 가치있는 금과 상아 조각상의 외관을 모방한 것입니다.

4. 푸른 쿠란의 2절판 페이지

5. 휴대용 쿠란 필사본

6. 우마르 아크타 쿠란의 2절판

전시관의 서론에 해당하는 다양한 나라와 시대의 쿠란들을 보여주는 전시실 안에 선다. 9세기 북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디고로 염색한 양피지에 쓴 쿠란 한 장이 전시되어 있다. 쿠란 한 권 전체가 오스만제국 병사의 목에 걸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진 것도 있고, 투르크-몽골 제국 황제 티무르의 소유였던 세로 2미터가 넘는 쿠란의 페이지도 있다. (208.p)

Folio from the “Blue Qur’an”
이 폴리오는 북아프리카에서 복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색 페이지와 은색 구절 표시가 있는 호화로고 다양한 코란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폴리오의 팔레트는 이웃한 비잔틴 제국에서 만들어진 자주색으로 염색된 금박 필사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초기 코란과 마찬가지로 문자들의 각 행의 길이를 동일하게 하고, 글자를 구별하는데 필요한 표시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읽기가 어렵습니다.

Portable Qur’an Manuscript
작은 코란은 부적과 공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인 문헌과 그림을 통해 오스만 시대에 터키에서는 산차크(깃발) 코란이라고 불리는 작은 필사본들을 금속 상자나 주머니에 넣어 군사 표준(알람)에 부착된 부적 펜던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완장이나 군인의 목에 걸기도 하고, 무기나 의식용 물건에 부착되기도 했습니다. 이 코란은 글씨 크기가 작아 읽기가 어렵지만 술탄과 그의 군대에게 전투에게 힘을 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Section from a Qur’an Manuscript
이 페이지 조각은 지금까지 생산된 코란의 가장 큰 사본 중 하나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학카크체(muhaqqaq) 스타일로 작성된 각 스크립트 줄의 길이는 3피트가 넘고 각 페이지의 높이는 원래 7피트가 넘습니다. 이 페이지는 아마도 서예가 우마르 아크타(Umar Aqta)가 통치자 티무르(Tamerlane, d. 1405)를 위해 쓴 거대한 코란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분명히 티무르는 아크타 티무르(Umar Aqta)가 인장 반지 아래에 들어갈 만큼 작은 코란을 쓴 후에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서예가는 수레를 타고 티무르에게 가져와야 할 정도로 큰 코란을 하나 더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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