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정독하는 요즘. 미술관을 배경으로 쓰인 에세이인 만큼 매우 다양한 작품이 언급된다. 작품 사진도 함께 실렸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잠깐.
책에서 언급된 작품 정보를 메트로폴리탄 공식 홈페이지에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본문과 감사의 말이 끝난 후 ‹본문에서 언급한 작품들›이 330.page부터 정리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것을 모르고 본문에서 언급된 작품명을 직접 기입해서 검색했다는.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검색하고 싶다면, 330~350.page에 기대된 각각에 부여된 취득 번호를 활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29.100.6과 같은 식이다. 책의 저자인 브링리 홈페이지에서도 작품 목록과 함께 메트 온라인 페이지 링크를 해둬서 작품의 이미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작품을 찾고 정리하는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쏟아질 만족감을 상상해 본다.
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2장 –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1. 성모와 성자
2. 건축가 티부르치오 페레즈 이 쿠에르보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은 횃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1230년대에 태어난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이고, 가장 젊은 주민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1820년에 탄생시킨 초상화 속 인물이다. (37~38.p)
Madonna and Child
엄숙하고 고도로 양식화된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하는 이 작품은 토스카나 도시 루카의 대표적인 화가인 베를링히에로(Berlinghiero)의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단 두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는 1204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후 이탈리아에 도착한 성화상에서 예술가가 알았을 처녀 호데게트리아(길을 보여주는 그녀)로 알려진 비잔틴 양식을 따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구원의 길로 지적합니다. 고대 철학자처럼 옷을 입은 아이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베를링히에로의 작품은 뉘앙스로 작동합니다… 몸짓의 언어, 부드러운 흐름, 인간과 신학적 차원 모두에서 미묘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Tiburcio Pérez y Cuervo (1785/86–1841), the Architect
느슨하게 말아올린 소매(회화적 역작)와 편안한 표현은 Goya의 단색 팔레트와 결합하여 예술가의 절친한 친구인 건축가 Tiburcio Pérez의 매우 직접적이고 비공식적인 초상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전 해에 고야는 건축가이기도 한 페레스의 삼촌을 훨씬 더 장엄하고 전통적인 초상화로 그렸는데, 이 초상화는 현재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Pérez는 Calle de Atocha의 의과대학을 포함하여 마드리드의 여러 기관 건물 설계를 담당했습니다.
3. 스페인 왕녀 마리아 테레사
훗날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비가 된 마리아 테레사 왕녀를 그린 초상화.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으며 대작 ⟨시녀들⟩로 유명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있었다.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는 허리를 깊이 굽혀 절을 하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이젤을 세운 다음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녀의 총명함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와 보여주는 마법 말이다. 정말 독특한 얼굴이다. 마리아 테레사는 열네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서는 어려 보였지만 나이보다 성숙한 눈을 가졌다. 예쁘거나 활발한 편은 아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고, 무엇을 보여주지도 감추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꽤 솔직하고 침착해 보인다. 자신의 이상한 삶에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후퇴나 양보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듯 그녀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39~40.p)
María Teresa (1638–1683), Infanta of Spain
원래 가슴 길이였던 이 그림은 그 후 잘려나갔다. 벨라스케스의 나비 리본이 달린 가발을 쓴 마리아 테레사의 닮은 꼴은 어린 공주의 공식 초상화에 대한 높은 요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그의 조수들이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되었다. 필립 4세의 딸인 마리아 테레사는 이 초상화의 유통을 통해 유럽 전역의 구혼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1660년 강력한 정치적 동맹에서 그녀는 그녀의 첫 사촌인 루이 14세와 결혼했고 프랑스의 여왕이 되었다.
4. 젊은 여성 – 습작
일을 시작한 다음 주, 나는 처음으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있는 곳에 배치됐다. 현재 서른네 점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그의 작품들 중 어이없게도 메트가 다섯 점이나 소장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나는 허리를 좀 더 곧게 편다. 이른 아침이지만 영국, 일본, 미국 중서부 등에서 온 관광객 몇 명이 그림에 경의를 표하러 왔기 때문이다. 포니테일을 한 예쁘장한 젊은 엄마가 1665년경에 그려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초상화 앞에 선다. 헤이그에 있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같은 테마의 더 유명한 그림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설명해서 그녀를 실망시킬 이유는 없다. (40~41.p)
Study of a Young Woman
부드러운 빛은 17세기 네덜란드 관객들에게는 이국적이라고 생각했을 옷과 의상 보석을 입은 젊은 여성의 얼굴을 비춥니다. 베르메르의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약 1665년,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은 의뢰받은 초상화가 아니라 소위 트로니(tronie)로 종종 공상적인 의상을 입은 흥미로운 인물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5. 잠든 하녀
모두가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 내 시선이 페르메이르가 즐겨 그렸던 조용한 집 안 풍경으로 가서 멈춘다. 뺨을 손으로 받치고 졸고 있는 하녀가 보이고 그 뒤로는 잘 정돈되고 텅 빈 듯한 집 안의 모습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빛을 받으며 펼쳐진다. 그림을 보다가 페르메이르가 포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는 깜작놀랐다. 가끔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운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가 바로 그 느낌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형 톰의 병실에서 끊임없이 들었던 느낌이었고, 쥐 죽은 듯 고요한 메트의 아침이면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느낌이기도 했다. (41.p)
A Maid Asleep
감독받지 않는 하녀의 잘못된 행동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공통된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와인 잔 옆에서 졸고 있는 젊은 하녀를 묘사하면서 베르메르는 평범한 장면을 도덕적 교훈을 대체하는 빛, 색상, 질감에 대한 조사로 변형시켰습니다. 왼쪽의 무너진 유리(현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됨)와 구겨진 테이블 카펫은 최근 떠난 방문객을 나타낼 수 있지만 X-방사선 사진은 베르메르가 원래 출입구에 서 있던 남성 인물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여 그림의 모호성을 높이는 것을 나타냅니다.
6. 비너스와 아도니스
16세기 베네치아의 가장 위대한 화가는 ‘티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티치아노 베첼리오다. 마치 물웅덩이와 적포도주를 섞어서 색을 빚어내기라도 하듯 그는 자신이 그려내는 광경을 장미빛으로 감쌌다. 나는 그의 명작 ⟨미너스와 아도니스⟩에 다가간다. 이 작품은 너무나 아름다운 침묵의 시와도 같아서 앞에 선 내 기분까지 거이에 함몰되어버린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인간 아도니스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아마빛 금발의 비너스와 여신의 품을 거부하고 위험 가득한 속세로 돌아가려는 자신만만한 젊은이 아도니스, 둘 중 누가 더 아름다운지 고를 수가 없다. 나도 티션이 본 고대의 시를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결국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 아도니스는 죽고 비너스는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빠져 그의 흐르는 피에서 붉은 아네모네 꽃이 피어나도록 한다. 아네모네라는 이름은 ‘바람에서 태어나다’라는 뜻이다. (43~44.p)
Venus and Adonis
로마의 시인 도비디우스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는 티치아노 베첼리오에게 그가 시라고 부르는 시, 즉 그림 속의 시를 그리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비너스는 애인이 사냥하러 떠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합니다. 정확히는 그가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너스의 뒷모습이 전달하는 관능적인 분위기는 관객의 시선을 교환하는 눈빛과 겁에 질린 큐피드를 통해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감각을 고조시킨다. 티치아노의 작업실에서는 이 작품의 여러 버전을 만들었지만 이 작품은 품질이 매우 뛰어나고 티치아노가 직접 그렸습니다.
7. 남자의 초상
아직 관람객이 없는 시간,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전시실 안을 걷다가 티션의 또 다른 작품을 발견한다. ⟨미너스와 아도니스⟩보다 훨씬 작고 덜 알려진 작품이다. 티션이 젊엇을 때 그린 ⟨남자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애를 써서 수정을 많이 하거나 공을 들인 흔적 없이 너무도 능숙한 솜씨로 완성한 작품이라 마치 햇빛이 어른거리는 연못에 우연히 비친 얼굴처럼 보인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길렀지만 그의 천사 같은 얼굴을 가리지는 못한다. 온화하고, 생기 넘치고, 젊음으로 가득한 얼굴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자신도 모르는 듯하다. 표면적으로 그가 장갑을 벗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지만 단지 짧은 찬나를 보는 것 같지가 않다. 그림 안의 시간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기보다 흘러들어 고인 느낌이다. 과거와 미래가 생명력 넘치는 현재에 휩싸인 듯이 젊은이는 가차 없는 시간의 화살을 피할 수 있기라도 하는 듯하다. (45~46.p)
Portrait of a Man
이전에 조르조네의 작품이었던 이 서정적인 그림은 현재 일반적으로 1515년경 티치아노의 초기 작품으로 간주됩니다. 표면은 심하게 마모되었으며 캔버스는 잘려져 있습니다. 오른팔은 원래 난간 위에 놓여 있었고 장갑을 낀 오른손 전체가 드러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8.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메트에 소장된 작품들 중 가장 슬픈 그림은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일 것이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엄청나게 슬픈 광경이지만 유난스럽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몸은 위엄을 잃지는 않았지만 축 늘어져 있다. 온화한 우아함이 우러나오는 분위기로 보아 그는 용감하게 고통에 맞섰던 듯하다. 마리아와 요한은 생각에 잠겨 땅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지쳐 보인다. 미친 듯 흘러간 하루가 끝나고, 남은 건 죽음 뿐이다. 죽음이라는 그 단도직입적인 사실, 불가해한 수수께끼, 거대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 단호함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다. (49.p)
The Crucifixion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지만 이 십자가형은 피렌체의 주요 화가 중 한 명인 베르나르도 다디(Bernardo Daddi)의 중요한 초기 작품입니다. 연대는 아마도 1320년경으로 추정되며, 개인적인 헌신을 위해 이중 제화의 한쪽 날개를 형성했을 수 있습니다. 앉은 두 인물의 포즈는 로마 조각 원형을 기반으로 하며 특히 아름답습니다. 그들의 확고한 형태와 엄숙한 표현은 조토의 모범을 입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