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별잡에서 김상욱 교수는 ‘우리는 어떻게 8시간 동안 일하는가’ 언급하며 ⟨가짜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기 착취’의 시대가 된 21세기 인류의 ‘가짜노동’
인공지능은 지금의 기술이지만 기계에 의한 인간의 일자리가 뺏기는 문제는 200년된 문제이다. 특히나 지금보다 가장 빠르게 인간의 일자리가 감소했던 것은 20세기초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붐이 오는데 일자리를 빼앗아 간 기계들은 가전 제품이다. 가사 노동에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쉴 새 없이 일을 해야 한다. 기계의 도입으로 대규모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그때 남겨 놓은 유명한 저술들이 있다. “앞으로도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겠구나. 미래에는 일간이 일을 안 하지 않을까?” 그때 러셀이 유명한 말을 또 남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1935)
100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0명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가 도입되면 50명의 노동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나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50명이 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셀 曰 “왜 50명이 일자리를 잃어야 하죠? 어제까지 우리가 하루에 8시간씩 일 하고 있었다면 내일부터는 여전히 100명의 사람이 하루에 4시간씩 일하면 되지 않나요?” 라고 한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하루에 4시간만 일을 하겠다고 답하지 못했는가?
러셀이 말하는 이유는 당신들의 노예 근성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일을 하지 않는 것 = 논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좋은 어감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가장 바쁠 거라고 예측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8시간씩 일하는가?
30년대에 비하면 지금 과학 기술은 그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더 많이 발전했다. 기계가 이렇게 많이 대체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8시간씩 일을 해 온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 가운데 하나가 ⟨가짜 노동⟩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 업무 시간을 채우고 있는 ‘가짜 노동’이란?
가짜 노동이란 무엇일까? 노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의미나 결과물이 불명확하다. 의미가 있어서 한다고 하지만 막상 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 일들이다. 가짜 노동에 대한 증거는 1950년에도 보고된 바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파킨슨 법칙’이다. 파킨슨 법칙이란 이렇게 하면 이해할 것이다. ‘공무원의 숫자는 업무량과 상관없이 늘어나기만 한다’
파킨슨의 법칙
1950년대 영국 장교 파킨슨은 어떤 이론을 내놓는다. 1930~1950년대까지 영국은 두 차례 전쟁에서 지면서 쭉 추락을 한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 했었다.1950년대 해군의 규모가 3분의 1로 준다. 대형 군함도 62척 → 20척으로 줄고 장교의 수도 31% 감소한다. 그런데 본부 인력은 도리어 늘어난다. 실무자와 상관없이 관리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1달을 줘도 보름을 줘도 일주일을 줘도. 결과물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업무는 주어진 시간에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업무는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 하지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을 채워낸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에 있는 사회학자들이 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를 했었다. 그러자 이것이 해군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분야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무원, 사기업, 어느 조직이든 특히 사무직 근로자 위주로 밀착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이거 안 해도 세상은 굴러가는데 내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회사에 나와서 시간만 떼우는 것이 너무 공허해.’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 출근을 하는 것이다.
⟨가짜 노동⟩의 저자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4시간만 일해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도 8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나머지 4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자신이 바쁘다고 하지 않는 순간 자신의 일자리는 쓸모 없어지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일이 가치 없다고 얘기하지 않고 심지어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전체 프로젝트가 굴러가는데 이런 시간들이 필요 있는지를 따져 보면 많은 부분이 ‘가짜 노동’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회의이다. 회의에서 아는 내용만 듣고 나왔다. 결정 사항이 하나도 없다. → 가짜 노동일 수 있다. 회의는 시간을 보내는 ‘합리적 행동’처럼 보이고 ‘의견 조율’이란 명목으로 점차 길어진다. 어떤 회사들은 회의를 15분으로 줄였더니 오히려 집중해서 회의를 끝냈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회의를 없애거나 줄이자 생산성이 증대했다.
남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고 하나 마나 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신입 너 이거 한 번 해 봐’ 당장 줄 일이 없어서 준 것인데, 열심히 하지만 사실 하나 마나 한 일을 하는 경우이다.
‘노동은 신성한 거야. 일 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아야 해’ 이런식의 관념들이 퍼져 있다. 부분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예전에 아우슈비츠를 간 적이 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찾아가면 정문 위 철로 된 문구를 볼 수 있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우슈비츠에서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도 ‘우리가 너를 착취하는 거야. 네가 유대인이니까 죽을 때까지 몰아붙이는 거야.’하고 하지 않고 ‘어가 하는 노동은 신성한 거야. 노동이 너를 자유케 할 거야’라고 착취의 명분으로 사용했다. 그곳에서 일하던 아우슈비츠 노동자들은 이 글자를 만들 때 저항을 한다. 아르바이트에서 B자를 반대로 쓴다. 원래는 위가 작고 아래가 큰데, 위를 크게 아래를 작게 만든다. 우리는 모든 착취와 억압을 저항하는 수용자들의 용기가 담긴 B이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믿어온 ‘노동의 신성함’은 어떤 사람이 말할 때는 고귀한 가치가 되는데, 나치도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8시간 동안 노동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지난 200~300년간 길들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왜 바쁘게 사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노동을 중요하게 여길까?
노동하고 일 하는 것이 질을 높인다는 개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는 자신이 지위가 높다는 것을 말하고 싶으면 ‘나는 논다’고 해야 한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 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 권력자의 특권은 여유가 많은 것이다. 노동은 노예가 하던 것이었다.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자본가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때부터는 노동을 한다는 것이 바쁘다는 것이 이 사람의 지위를 보여준다. 지금도 우리는 바쁘다고 말할 때 자랑스러워 한다.
한국과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피로 사회⟩ 라는 책이 있다. 19~20세기에 노동에 있어서 착취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따로 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이라는 게 전통적인 개념이다. 21세기에 넘어와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같은 사람이 된다. 일종의 성과주의적인 사회가 되니까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19~20세기 전통적인 착취보다 21세기 셀프 착취는 더 위험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걸 착취라고 생각 안 한다는 거다. 나는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다.
저자들의 결과는 급진적이다. 이제 놀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필요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사회 체계에 대한 상상력과 철학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관건은 기계가 만드는 부가가치를 100명에게 나눠서 줘야 하는 것이다. 현재 나온 대안은 이런 거다. ‘기본 소득’이라고 해서 기계로 돈을 번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일이 줄어든 사람에게 소득으로 주겠다. 만약 노동 시간이 극적으로 줄어든 세상이 오면 지금과 완전 다른 체계, 경제 논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거라 생각한다.
※ 출저 : 우리는 어떻게 8시간씩 일하는가❓ ‘자기 착취’의 시대가 된 21세기 인류의 ‘가짜 노동’ #highlight #알쓸별잡 E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