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0장 작품 ④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0장 마지막 작품 소개이다.

이번 작품에는 ‘마담 X’가 포함되어 있다. 삼프로 TV ⟨전원경의 아트 앤 더 시티⟩ 뉴욕편에서 사전트의 작품으로 소개되어서 알게 되었는데 반갑구만.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사전트는 파리로 유학을 가서 승승장구했는데, ⟨마담 X⟩ 초상 스캔들 때문에 파리에서 도망치듯이 런던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사전트는 미국인이지만 당시에 프랑스 국전인 살롱전에서 여섯 번이나 입상한 잘 나가는 젊은 화가였다. 사전트에게 초상을 의뢰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파티를 갔다가 버지니아 고트로라는 아름다운 미국 여성을 봤다. 뉴올리언즈 출인이었다. 24살이었고 자기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은 프랑스인 은행가 부호에게 시집을 온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인사였다.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초상을 먼저 그리겠다고 사전트가 먼저 제의를 했다.

그리고 실물 크기의 초상을 그려서 살롱전에 출품을 했다. 그때까지 사전트 그림에 대해서 칭송만 하던 프랑스 언론이 갑자기 거센 비난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이 야하다는 이유로. 여성의 의상이 가슴이 너무 파였다, 피부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다, 귀가 빨간 것은 외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사전트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고, 파리에서 도망치듯이 런던으로 가게 된다. 런던에 먼저 정착해 있었던 소설가 헨리 제임스가 그를 도와서 런던에 정착해서 그후에 런던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 일을 거의 5년 동안 하다 보니 몇 가지 습관이 생겼다.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내가 일하기 좋아하는 전시실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전시실을 구별하게 됐다.” 인상파 그림은 왜 항상 그렇게 흐릿해 보이는 거 같아?”처럼 익숙한 대화를 엿듣게 되면 언제, 어떻게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지 한다. 달리 말하면 나는 이제 베테랑이 됐고, 이 일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나에게 맞는 리듬에 따라 움직이며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날에 내가 맡은 일은 그저・・・ 여느 직장의 일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이 상태가 나를 그리움과 후회로 가득 채운다.

250.p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0장 작품 ③

10장 –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27. 마담 X (마담 피에르 고트로)

존 싱어 사전트의 매혹적이기로 유명한 초상화 ⟨마담 X⟩ 옆에 자리를 잡는다. 비록 지금은 그림과 대조를 이루는 내 허름한 몰골이나 이 희극적인 조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말이다. 이건 그냥 일상이다. 시간이 흐르고 관람객들이 줄지어 들어올 때면 여러 파편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오늘은 여호와의 증인 그룹이 몇 번이나 방문할지 궁금해진다. 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마담 X⟩로 가는 길을 물으며 다가오길래 돌아봤더니 혹스타 마이클 스타이프와 배우 킴 캐트럴이었던 일을 떠올린다. (251.p)

Madame X (Madame Pierre Gautreau) 저작권 보호로 다운로드 불가 – 링크를 클릭하면 이미지를 볼 수 있음
피에르 고트로 부인(루이지애나 태생의 버지니 아멜리 아베뇨, 1859~1915)은 파리에서 유명한 외모로 알려져 있었다. 사전트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전시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커미션 없이 작업했지만 시터의 공모로 그는 그녀의 대담한 개인적인 스타일을 강조하여 그녀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운의 오른쪽 끈을 보여주었습니다. 1884년 살롱에서 이 초상화는 칭찬보다는 조롱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사전트는 어깨끈을 다시 칠하고 30년 넘게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것을 메트로폴리탄에 팔았을 때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박물관에 시터의 이름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8. 북동풍

바위에 부딪혀 장엄하게 부서지는 파도와 바람에 휩쓸린 메인주의 해변을 그린 윈슬로 호머의 작품들 앞이다. 그림들은 너무나 강렬해서 내 기분을 조금 물들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주 조금으로 그친다. 바닷가의 짠 공기가 맡아지지도, 딱히 맡고 싶지도 않다. (252.p)

Northeaster
말년에 호머는 자신의 그림을 점점 더 편집하여 자신의 구성과 의미를 명확히 했습니다. 1895년 그가 프라우츠 넥(Prouts Neck)에서 처음으로 겨울 폭풍의 서사시적인 장면을 전시했을 때, 왼쪽 하단 모서리에 있는 바위 위에 웅크리고 있는 두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896년에서 1900년 사이에 예술가는 인간의 존재를 제거하고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를 강화했습니다. 1901년 뉴욕의 유니언 리그 클럽에서 세련된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뉴욕 트리뷴의 평론가는 순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강조를 높이 평가하고 이 그림이 “세 가지 기본 사실, 바위들의 투박한 힘, 무겁고 장엄한 바다의 움직임, 그리고 징벌적인 사람의 존재로 표시되지 않는 거대한 자연 공간의 분위기”라고 표현하며 감탄을 했습니다.

29. 엄마와 아이 (낮잠에서 깨는 아이)

어느 순간엔가 나는 기계적으로 A지점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미국의 인상파 화가 메리 카사트의 작품 옆에 선 나 자신을 발견한다.

카사트는 분명 훌륭한 화가였지만 나는 항상 그녀의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그랬기 때문에 최근에 아메리카 전시관을 돌아볼 때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카사트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았고 모네와 드가 같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하면서 프랑스에서 거의 모든 주요 작품을 완성했다.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미국인도 아니고, 주류에 속했던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부르주아 계급이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전형적인 인상파 작품들만큼 ‘흐릿하지 ‘ 않고 옛 거장들의 그림보다는 더 즉흥적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스타일인 것이다. 그녀에 대해 한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건 명확하게 생각할 만한 부분을 찾지 못해서였다. (252~253.p)

Mother and Child (Baby Getting Up from His Nap) 저작권 보호로 다운로드 불가 – 링크를 클릭하면 이미지를 볼 수 있음
이 그림은 1890년경 이후 카사트의 전문 분야가 된 엄마와 아이 사이의 유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작가는 성인 여성 목욕가라는 인기 있는 인상주의 주제를 고상한 어머니의 용어로 번역했습니다. 즉, 몸을 씻는 대신 아름답게 옷을 입은 여성이 아이를 씻기는 것입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는 카사트의 빈번한 모델 중 한 명인 줄스라는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풍부한 색상과 색다른 공간 처리를 갖춘 이 캔버스는 메트로폴리탄 컬렉션으로 처음 들어간 카사트의 작품입니다.

모작을 평가하면서 나는 그것이 사랑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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