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0장 작품 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0장은 이슬람 전시관에서 3개월이 끝나갈 무렵 경비원들의 근무 구역을 재배치하는 시기의 이야기이다. 구역의 선호도를 의식적으로 피하던 브리리는 G구역(아메리카 전시관, 악기 전시관, 무기 및 갑옷 전시관)을 새로운 소속 구역으로 결정한다.

결국 내가 G구역을 새로운 소속 구역으로 결정한 건 아주 고귀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화장실이 많고, 라커품 바로 위에 있고, 이 구여의 정규 감독관인 싱 대장은 우리가 직접 팀을 선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낯선 영역과 의문 들을 탐구하러 나설 기분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동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고 미국인으로서 아메리카 전시관에서 느끼게 될 친숙함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34.p

아메리카 전시관 작품을 만나러 가 보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9장 작품 ②

10장 –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1.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블레이크가 근무 중에 생긴 일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들어봐.” 그가 말한다. “내가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가 있는 B구역 프랑스 전시실에 있는데 한 꼬마가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로 그림을 찌르는 거야. 하느님 맙소사. 꼬마한테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하고 그림을 살피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찌른 부분에 약간 자국이 난 것 같은 거야. 보고를 했지. 기술자가 도착했고. 그리고, 이게 정말 이상한 대목인데, 기술자가 표면 전체를 손가락으로 훑는 거 있지! 꽤 세게, 선크림을 바르듯이. 그러고는 말하더라고. ‘아냐, 자국처럼 보이는 저게 뭐든 간에 바니시 몇 겹 아래에 있어. 오래된 거야.” (229p.)

The Abduction of the Sabine Women
이 그림은 로마 고대 연구에서 파생된 푸생의 혁신을 구현한 것입니다. 고대 조각품을 기반으로 한 여러 형상 그룹은 무대에서 액션을 취하는 무용수들의 안무를 연상시키며, 인물들 사이에 짜여진 휘장의 복잡한 상호 작용은 푸생이 최고의 컬러리스트임을 드러냅니다. 푸생은 작은 극장 같은 상자에 밀랍 인형을 배치하여 그림의 정교한 공간 관계와 형식적 균형을 설정했습니다. 폭력적인 주제는 로마 건국 신화에서 유래합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여성들을 강제로 아내로 붙잡을 의도로 이웃 사비니족을 축제에 초대했습니다. 로마 지도자 로물루스가 망토를 들어올렸을 때(여기 왼쪽 참조) 그의 전사들이 그들을 붙잡았습니다. 이 그림은 1630년대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의 소유였고, 이후에는 루이 13세의 총리 리슐리외 추기경의 소유였습니다.

2.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

3. 존 싱글턴 코플리의 멋진 초상화 (실바누스 본 부인)

이 전시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다소 딱딱하지만 정작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이다. 이 그림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한다. 사람들은 그 앞으로 곧장 걸어가서 “세상에! 고속도로 지하도 밑은 통과 못 하겠는데!” 같은 반응을 보인다. 마치 슬쩍 보고 지나치는 길가의 대형 홍보물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 그림 앞에 배치될 때면 나는 관람객들이 워싱턴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복도를 멀리 내다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존 싱글턴 코플리의 멋진 초상화들을 무시하고 카메라와 핸드폰을 꺼내 들며 내쪽으로 뛰듯이 걸어오는 모습, 아버지들이 불룩 튀어나온 술배를 감추기 위해 숨을 참으며 워싱턴의 포즈를 따라하는 몸짓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그림이 진품이라고 확인해주고, 그 옆에 작은 캡션에 적힌 말이 복제품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걸 좋아한다. 거기엔 그림의 ‘액자’가 복제품이라고 쓰여 있믄데, 큐레이터들은 유명한 그림 근처에 그 단어를 두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234~235.p)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776년 12월 25일 트렌턴에서 헤센군에 대한 워싱턴의 공격에 대한 Leutze의 묘사는 미국과 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Leutze는 1849년에 이 주제에 대한 첫 번째 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1850년에 그의 스튜디오에서 화재로 손상되었으며, 브레멘 쿤스트할레(Bremen Kunsthalle)에 의해 복원 및 인수되었지만 1942년 폭격으로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1850년에 로이츠(Leutze)는 이 버전의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이 주제는 1851년 10월 뉴욕에서 전시되었습니다. 이 전시에서 마샬 오 로버츠(Marshall O. Roberts)는 당시 엄청난 금액인 $10,000에 캔버스를 구입했습니다. 1853년에 노들러(M. Knoedler)는 그것의 판화를 출판했습니다. 다른 예술가들의 사본과 마찬가지로 그림에 대한 많은 연구가 존재합니다.

Mrs. Sylvanus Bourne
머시 고햄(1695~1782)은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코드 곶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1718년에 그녀는 부유한 상인인 실바누스 본과 결혼했고, 2년 후 그들은 항구 도시인 반스터블에 정착했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11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코플리(Copley)는 남편이 죽은 지 3년 후, 그녀가 71세였을 때 본(Bourne) 부인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무릎에 책을 들고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시청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4. 식탁, 티 테이블, 작업 테이블, 카드 테이블, 접이식 테이블, 상판각도 조절 테이블, 콘솔 테이블, 사다리꼴 다리 테이블, 협탁

5. 쾌종시계, 탁장시계, 벽시계, 도토리, 등대, 밴조, 리라 모양 시계

메인 회화 전시실 바로 아래에는 메트를 통틀어 가장 이상하고 다양한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 중 하나인 메자닌 공간이 있다. 이 ‘공개된 수장고’에는 정식 전시실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수만 개의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별다른 안내판 없이, 관람객들은 지난 4백 년간의 아메리카 문물들이 뒤섞여 있는 키가 큰 유리 케이스들을 따라 길고 좁은 복도를 통화하게 된다.

테이블에 관심이 많은가? 이곳에는 식탁, 티 테이블, 작업 테이블, 카드 테이블, 접이식 테이블, 상판 각도 조절 테이블, 콘솔 테이블, 사다리꼴 다리 테이블, 협탁이 있다. 시계를 좋아한다면 이곳에서 쾌종시계, 탁장시계, 벽시계뿐만 아니라 도토리, 등대, 밴조, 리라 모양 시계도 찾을 수 있다. 메자닌은 메트에서 방문객들이 전시물을 보고 “바버라 이모가 갖고 있는 거랑 똑같다”라고 말하는 유일한 구역이다. (235~236.p)

세이커식 식탁 1800-1825년
월넛 티 테이블 1740-1790년
마호가니 작업대 1815-1820년
장미목과 마호가니 카드 테이블 1825년경
메이플 접이식 테이블 1700-1730년
메이플과 마호가니 상판 각도 조절 테이블
옐로 파인과 오크 사다리꼴 다리 테이블 1640-1690년
오크, 파인, 메이플 협탁 1650-1700년

좌 : 월넛, 튤립 포플러, 화이트 파인 쾌종시계 1750년-1760년 / 우 : 마호가니와 화이트 파인 벽걸이 시계 1800-1810년
좌 : 마호가니와 화이트 파인 탁상시계 / 우 : 마호가니 등대형 시계 1800-1848년
좌 : 마호가니 도토리형 시계 1847-1850년 / 우 : 월넛과 화이트파인 액자 거울 1740-1790년

6. 자브 페럿

7. 토머스 브루스터 쿨리지 부인

8. 앙리 라 투렛 드 그루트

수백점의 그림들은 상하좌우로 서로에게 닿은 채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긴 유리 케이스에 어지러운 모자이크를 만들어낸다. 케이스 사이를 걸으며 그림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십 쌍의 눈을 의식한다. 자브 페럿, 토머스 브루스터 쿨리지 부인, 앙리 라 투렛 드 그루트 씨, 거기다 특별한 것 없는 이름을 가진 몇몇 초창기 미국인들의 눈이다.

보통 이런 초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가능한 한 세련되어 보이도록 노력했고, 그림은 그들이 바랐을 것보다는 좀 더 숨김없고 평범한 느낌으로 그려졌다. 초창기 미국 화가들은 유럽의 선진 문화를 동경했지만 그 세련됨을 모방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매력이다. (236~237.p)

Job Perit

Mrs. Thomas Brewster Coolidge

Henry La Tourette de Groot

9. 바다로 되는 노을

어느 날 나는 메트가 처음으로 취득한 그림 몇 점을 발견했다. 그림들의 취득 번호, 작품의 캡션 라벨 하단에 나오는 일련 번호 같은 것을 보고 눈치를 챈 것이다. 취득 번호는 대개 ‘208.11.413’처럼 길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74.3’으로 이건 메트가 영구적으로 터를 잡기 6년 전인 1874년에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림들은 미술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존 프레더릭 켄셋이 그린 사랑스럽고 절제된 느낌의 풍경화이다. (237.p)

Sunset on the Sea
1872년 12월 그가 사망했을 때 코네티컷 주 다리엔에 있는 켄셋(Kensett)의 여름 ​​스튜디오에 남겨진 “마지막 여름의 작품”이라는 그림 그룹은 켄셋의 추종자, 친구, 찬양가들 사이에서 큰 호기심과과 매혹의 주제였습니다. 그 달 말에 센추리 클럽에서 그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들의 경이로움은 부분적으로 순전히 참신한 요소였습니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작품이었고, 하나의 작품으로서 컨셋의 비전과 감성에 대한 궁극적인 증거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인 사람들에게 그 그림들 중 이보다 예술가의 간절하고 암시적인 눈의 절대적인 표현을 더 잘 표현한 그림은 없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그는 상륙의 증거를 제거하고 J.M.W Turner를 제외한 소수의 예술가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빛나는 태양을 소개했습니다. 넓은 바다 위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빛과 물이며, 바다와 하늘의 신부입니다.” 한 찬양가는 단언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 같은 예술 분야의 초보가 이것을 대단한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이 주제넘은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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